엽관제, 엽관주의라는 말이 있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충성도와 기여도를 기반으로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이다. 초기 미국이 유독 심했으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일부 도입하고 있는 제도이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자신들의 국정 운영 방향과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을 장, 차관, 공기업 사장 자리에 임명하는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것인데 말이다.
그 말은 정권이 바뀌면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장, 차관은 당연히 대선 이후 바로 임명되며 바뀌니 큰 이슈가 없지만 공기업 사장 자리가 문제다. 한국에서 공기업 사장 자리란 정치의 산물이다. 어차피 예산따오고 정부의 지시사항을 받아오고, 기관의 의견을 담당부서에 올리기 때문에 집권 정당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맡아도 돌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내부 승진으로 올라오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고, 대다수가 대선 후에 임명된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어도 끝까지 버티면서 안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을 거느리는 공기업 수장자리는 버텨볼만한 자리이다. 비록 끝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총알 사건으로 사퇴했다.
관심을 안 가지면 모를 일이지만, 기내에서 총알이 발견되는 일이 2023년 4월에 발생했다. 다행히 비행기 이륙 후 얼마지나지 않아 발견돼서 큰 일 없이 회항했다. 해당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고 숨겨져서도 안되는 일이다. 이 일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사퇴했다. 인천국제공항사장은 당연히 전 정권에서 임명된 야권 인사였다. 이번 총알 사건이 중요하긴 하나, 사장이 사퇴할만한 일인지는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안전에 직결되는 일이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누군가 책임을 확실히 지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수정보완을 해서 공으로 과를 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권 인사였다면 한 번쯤 넘어갈 가능성도 있었을 것 같다.(워낙 큰 일이라 여권 인사여도 사퇴했으려나...) 업무상 실수는 언제나 발생하고, 중요한 것은 실수에서 배우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출입국쪽의 인력문제라면 인력을 보충하거나, 추가 교육을 시키거나, KPI상 업무집중도를 높게 평가하는게 맞다. 장비의 문제라면 장비 업그레이드나 업체 변경이 맞을 것이다. 그외 매뉴얼이나 사고대처를 손 보는 것도 방법이고 말이다.
비슷하게 KT 사장도 사퇴했다.
KT는 민간기업이고, 규모가 거의 대기업 그룹사 정도는 된다. 단순 통신사가 아니라 각종 부가 사업에 부동산쪽에도 연관되어 있는 회사다. 그런데 민간기업이라고 하기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최고 지분을 갖고 있고, 통신사업 인허가 이슈도 있어서 KT는 절반쯤 공기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KT회장은 역사적으로 연임에 성공한 적이 없다. 이정도 자리를 승리한 정권에서 놔둔다는게 말이 안된다. 국정운영의 방향성에 맞고, 정당의 승리에 기여한 사람을 회장으로 임명하는게 당연히 맞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구현모 회장이 연임을 위해 열심히 움직였지만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엽관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대선에서 이긴 정권은 5년동안의 방향성에 대해 국민이 다수결로 동의해 준 것이다. 이 방향을 위해서라면 정부 및 연계 기관이 한몸처럼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 기관에는 공기업도 포함된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선거가 이뤄지면 지도층 변경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도 이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양당제 하에서 야당은 곧 미래의 여당이며, 본인들도 새로운 국정 방향성을 위해서는 모든 기관장을 갈아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 이후에 수 많은 기관장이 바꼈지만, 무능한 사람들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수백수천명 조직의 헤드가 됐던 사람들이라면 모든 직장인의 워너비 아닐까? 새로운 대의를 위해 교체된 것이다. 그래도, 유능한 사람들이 고이면서 썩지않고, 최소 5년마다 교체되며 각 공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게 민주주의와 엽관제의 진짜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인류의 모든 정치체제 하에서 현재까지는 최종 승리한 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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